세상에 뿌려진 재미를 찾아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도시 기행

왕의 걸음으로 걸어보는 수원 화성행궁

walkaholic now 2024. 4. 1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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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행은 계획이 절반, 여행중 일어나는 계획대로 되지않는 돌발사항이 절반이다. 

계획대로 되는 건 별로 없겠지만 그곳이 어디든 떠나기 전 좋은 계획을 세우면 딱 그만큼 좋은 여행이 기다린다. 

 

수원의 화성 안쪽에 자리잡은 화성행궁을 가서 왕의 걸음을 흉내내 걸어보기로 했다. 

 

화성행궁 주차장이 바로 옆에 있지만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수원시 팔달구 행궁로 18)

수원 화성행궁을 넓게 둘러싼 화성의 안쪽에 몇군데 공용주차장이 있으니 이용하시면 되겠지만 주말에는 여기저기 모든 주차장이 전쟁터일 듯 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대체주차장을 알려드리자면...

연무대 주차장 : 수원시 팔달구 매항동 3-17

화홍문 공영주차장 : 장안구 팔달로 280

연무동 공영주차장 : 장안구 경수대로 743번길 57

장안동 공영주차장 : 팔달구 장안동 51

팔달구청 주차장 : 팔달구 창룡대로 23 팔달구청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더욱 풍성한 여행이 된다고 믿지만 여행지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면 당일치기 여행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시간의 제약이 없다면 대중교통 이용을 강력 추천합니다.

 

대부분의 여행지 교통안내는 서울중심으로 되어있어 타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의 배려는 부족한거 같다. 

수원 대중교통 여행은 일단 수원역 또는 수원종합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하면 되겠다. 

수원 시내버스를 타고 팔달문 또는 장안문으로 와서 시내 관광을 시작하면 화성 둘레길과 행궁 등 수원의 주요관광지를 모두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화성행궁 앞 광장
광장 옆 자전거 대여소

자전거 대여소와 화성행궁 앞 관광정보센터는 바로 옆에 서로 이웃하고 있다. 

미리 여행정보를 확인하고 오지 않았다면 관광정보센터에서 각종 정보를 얻으시고 시내를 좀더 빠르게 이동하고 싶다면 자전거 대여를 하는 것도 좋을거 같다. 

광장 옆 관광안내센터
광장 옆 수원시립미술관 (입장료: 어른4,000원, 청소년2,000원, 어린이1,000원)

 

행궁()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지방에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 거처하는 곳을 말하며,

그 용도에 따라서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전쟁과 같은 비상시에 위급함을 피하고 국사(國事)를 계속 하기 위해 마련된 행궁으로는 강화행궁, 의주행궁, 남한산성행궁 등이 있고,

휴양을 목적으로 설치된 행궁으로는 온양행궁이 있다.

그리고 왕이 지방의 능원(陵園)에 참배할 때 머물던 행궁으로 화성행궁이 있다.

 

전국에 여러곳이 있고 신라시대 이후 모든 왕정국가 시대에 존재해 왔다.

왕이 도성 내외를 막론하고 숙소로 한번 결정하면 행궁이라고 불렸다.

임금이 어떤 곳에 행()하면 자연히 그곳이 행궁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번 행궁이 되면 이후에도 계속해서 궁궐과 같이 대우하였다.

 

수원에는 화성행궁이 있고 수원행궁도 있다. 

수원행궁은 지금의 현륭원 자리에 있었던 행궁이다. 또한 화성행궁과는 엄연히 다른 행궁이다.

화성행궁 입장료 : 어른 1,5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700원

스탬프 용지 : 500원 별도 구매

아이들 처럼 착실히 스탬프를 찍고보니 왠지 뿌듯한 성취감이 든다. 미션클리어!!

신풍루는 화성행궁의 정문이다. 조선 정조 13(1789)에 수원읍의 관청 건물을 세우면서 그 정문으로 지었다. 처음에는 진남루鎭南樓라 부르다가 1795년에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면서 이름을 신풍루로 바꿨다. 신풍루는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고향인 풍패沛에서 따온 이름으로 제왕의 고향 풍패지향沛之鄕으로서 화성을 자리매김하고자 했던 정조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건물은 2층의 누각 구조로 아래층은 출입문으로 쓰고, 위층에는 큰 북을 두어 군사들이 주변을 감시하고 신호를 보내는 용도로 사용했다. 문루 좌우에는 행랑을 두었고, 양쪽 끝에는 군영을 배치해서 경호 체제를 갖췄다. 정조는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때 신풍루에서 수원 주민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는 행사를 베풀었는데, 당시의 행사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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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랑 : 대문간에 붙어 있는 방

봉수당은 화성행궁에서 가장 위상이 높은 건물이다. 조선 정조 13(1789)에 고을 수령이 나랏일을 살피는 동헌으로 지었다. 처음 이름은 장남헌壯南軒이었으나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계기로 봉수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궁궐에서는 대비나 상왕이 머무는 건물에 목숨 수壽 자나 길 장長 자를 붙이는 전통이 있어, 혜경궁 홍씨의 장수를 기원하며 이름을 바꾼 것이다.
건물은 정면 7칸으로 일반 동헌과 마찬가지로 대청과 방을 둔 구조이나, 마당 한가운데에는 왕이 지나는 길인 어로를 두었고 건물 앞에는 넓은 기단인 월대를 갖추었다. 어로와 월대는 일반 동헌에는 없고 임금이 머무는 공간에만 설치하는 시설이다. 1795년 윤 2 13,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가 열리던 날 봉수당 월대 앞에 넓은 무대를 설치하고 궁중연희가 편쳐졌다. 당시 행사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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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대 : 궁궐의 정전, 묘단, 향교 등 주요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경룡관은 장락당으로 들어가는 대문 상부에 지은 다락집이다. 당나라 태종 때 열여덟 명의 학사들이 임금의 시에 화답한 것을 본떠서 정조가 직접 이름을 지었다. 경룡관은 당 태종의 궁전 이름이기도 하다. 아래층 대문 이름은 지락문至樂門이다. 이는 즐거움에 이른다는 뜻으로 장락당으로 들어가는 것이 즐겁다는 의미이다. 문의 규모는 작으나 네모난 돌기둥 네 개를 우뚝 세워 위엄을 높였다.

장락당은 조선 정조 19(1795)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열면서 혜경궁 홍씨가 머물 처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정조는 중국 한나라의 고조가 어머니를 위해 장락궁을 지은 것을 본받아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장락당을 짓고 현판의 글씨를 써서 내렸다. 장락당과 봉수당은 연결되어 있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 장락당은 임금이 화성에 내려오면 머무는 처소로도 사용되었다.
건물은 전체 13칸 규모이며, 삼면에 툇간을 두어 통행에 편하도록 했다. 온돌방은 매 칸마다 겹겹이 문을 달아 아늑하게 만들었고, 문을 모두 열어젖히면 실내가 트이도록 했다. 정조는 장락당과 복내당 사이의 담장에 다복문多福門과 장복문長福門이라는 두 개의 문을 내었는데, 이를 통해 어머니의 복을 기원하는 정조의 효심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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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간 : 집채의 안둘레간 밖에 딴 기둥을 세워 만든 칸살

복내당은 수원읍 고을 수령과 가족이 거처하는 건물이다. 조선 정조 18(1794) 화성행궁에 장락당을 만들기 전까지는 왕의 숙소로도 쓰였다. 정조가 건물의 이름을 직접 짓고 현판의 글씨를 써서 내렸는데, 복내福內란 ‘모든 일이 밖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면 복이 안에서 생겨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조가 쓴 현판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복내당은 처음에는 역ㄱ자 모양의 작은 건물이었으나 1794년에 북쪽으로 온돌방 4칸 반을 추가하면서 ㄷ자 모양으로 확장되었다. 서쪽으로 서별당이 들어서고, 동남쪽으로도 행각이 늘어나서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20세기 초 경기도립병원이 들어서면서 철거되어 화성행궁을 복원할 때 다시 지었다.

살아있는 식물을 이용해 만든 푸른 병풍 (취병)

취병은 복원이 진행중이다.

심어놓은 나무들이 자라 푸른 잎을 돋우면 옛모습으로 멋진 병풍이 될거다. 

낙남헌은 화성행궁에서 공식 행사나 연회를 열 때 사용하는 건물이다.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부하들 덕분에 나라를 세울 수 있었음을 감사하며 낙양洛陽의 남궁南宮에서 연회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를 본떠서 이름을 지었다. 정조는 1795년 을묘원행 당시 낙남헌에서 수원의 백성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무과 시험을 치르고 상을 내리는 등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낙남헌 건물은 벽이 없는 개방된 구조로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다. 연회를 베푸는 건물답게 건물 앞에는 넓은 월대를 두어 격식을 높였다. 월대로 오르는 계단 양 옆에는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낙남헌은 궁궐 전각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건물로 원형이 잘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수원군청으로 사용되었고, 신풍국민학교 교무실로도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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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대 : 궁궐의 정전, 묘단, 향교 등 주요 건물 앞에 설치하는 넓은 기단

득중정은 활을 쏘는 정자로서 조선 정조 14(1790)에 지었다. ‘활을 쏘아 맞으면 제후가 될 수 있고, 맞지 않으면 제후가 될 수 없다射中 則得爲諸侯 射不中 則不得爲諸侯’ 라는 구절을 본떠서 이름을 지었다. 본래 낙남헌 터에 있었으며 정조가 글씨를 쓴 현판이 걸려 있었다. 1794년에 건물을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임금이 활을 쏘는 어사대를 특별히 마련했다. 정조는 수원에 올 때면 득중정에서 활을 쏘았다.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때 신하들과 활을 쏘고 매화포를 구경한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 있다.

화령전은 정조의 어진御眞 즉 초상화를 모시고 제사지내던 곳으로, 정조 이후 모든 왕들이 직접 방문하여 제사를 지냈다는 점에서 그 위상이 높습니다.

복원공사가 진행중인지 개방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로한정과 내포사로 오르는 길.

내포사는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행궁에 소식을 알리는 역할을 하던 군사 시설이다. 화성행궁 후원에서 높고 탁 트인 곳에 있어서 사방을 관찰하기에 적절하다. 평상시에는 장교 1인과 군졸 3인이 근무하였지만 왕이 행궁에 머물면 장교 2인과 군졸 4인을 배치해 경비를 강화했다. 전면 반 칸은 개방하고 좌우에 낮은 벽을 쳐서 비바람을 막았으며, 군사들이 머무를 수 있도록 후면 1칸에는 온돌을 설치했다.

미로한정은 화성행궁 후원에 세운 소박한 정자이다. 조선 정조 13(1789) 수원읍을 팔달산 아래로 이전한 이후에 지었다. 처음 이름은 육면정六面亭이었으나 1795년에 미로한정未老閑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는 ‘늙기 전에 한가로움을 얻어야 진정한 한가로움이다未老得閑方是閑’라는 시구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들 순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수원에 내려와 한가하게 노년을 즐기고자 했던 정조의 뜻이 담겨 있다.
화성 축성을 막 시작한 1794년 정월, 정조는 미로한정에 올라가 허허벌판이던 수원부에 1천여 집이 들어서 번성한 모습을 바라보며 관리들을 칭찬했다. 정조 재위 기간 동안에 활약한 화가 김홍도는 미로한정 주변에 가을 국화가 가득한 모습을 ‘한정품국閒亭品菊’이라는 그림으로 남겼다.

화성행궁 유여택 앞 마당에 있는 앙부일구

유여택은 수원읍을 옮긴 이듬해인 조선 정조 14(1790)에 지은 건물로, 화성 축성을 시작하던 1794년 가을에 증축되었다. 처음 건물은 은약헌隱若軒으로 부르다가 증축 후 이름을 바꾸었다. 유여택이란 <시경>에서 주나라의 기산岐山을 가리켜 ‘하늘이 산을 만들고 주시어 거처하게 하였다此維與宅’라는 고사를 인용해서 지은 이름이다. 정조는 유여택에서 신하들의 보고를 받고 과거 시험에 합격한 무사들에게 상을 내리기도 했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한 뒤에는 화령전이 완성되기 전까지 현륭원 재실과 창덕궁 주합루에 있던 정조의 초상화를 모시는 공간으로도 사용되었다.
처음 지은 은약헌의 북쪽 1칸은 공신루拱宸樓라는 누마루였는데 증축하면서 실내에 온돌을 놓고 창호를 달았다. 현재 창호는 복원되지 않았다.

외정리소는 화성에서 거행되는 국왕의 행차나 행사에 드는 모든 비용 문제를 총괄하는 곳이다. 조선 정조 19(1795)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화성에서 치를 때 행사준비를 담당한 임시기관으로 만들었다. 화성 성역이 끝난 후에는 행사준비뿐 아니라 화성행궁의 수리와 군사들의 식량과 말 먹이까지 관장하였다. 1796년에 유여택 동쪽의 빈의문 밖에 건물을 짓고, 대문에 외정리아문外整理衙門이란 현판을 걸었다. 마루로 된 대청 6칸을 중심으로 주위에 행랑과 창고를 두었다.

조선 정조 18(1794) 화성행궁을 증축하며 정문인 신풍루 좌우에 군영을 지었는데 남쪽은 남군영, 북쪽은 북군영이라고 부른다. <화성성역의궤>에는 두 군영의 건물이 동일하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행궁전도 그림을 보면 남군영은 일자형이고, 북군영은 ㄷ 자형이다. 반면 <정리의궤>행궁전도에는 북군영이 ㄱ 자형으로 그려져 있다. 이에 2002년 복원 시의 발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북군영을 ㄱ 자형으로 복원했다.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좌우에 남군영과 북군영 건물을 짓고 약 100명의 군사가 교대로 행궁을 지켰다. 남군영은 국왕 친위 부대인 장용영 외영 군사들이 주둔하는 건물이다. 장용영 군사는 왕이 화성에 내려올 때는 물론 평소에도 화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 가을로 두 번 시험을 치러서 수석을 차지한 군사에게는 곧바로 관직을 높여 주는 등 특별한 혜택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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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영 외영(壯勇營外營) : 정조의 친위군사조직 중 화성을 지키는 부대

집사청은 관청에서 치르는 제사나 행사를 준비하는 집사들이 근무하는 건물로 조선 정조 14(1790)에 건립되었다. 정조의 현륭원 행차를 비롯해서 왕이 화성에 내려와 진행하는 모든 행사를 준비했다. 평소에는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수령이 화성행궁의 객사인 우화관에서 올릴 의례를 준비하는 곳으로 쓰였다. 집사청은 우화관 가까이에 있어 효율성을 고려하여 배치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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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 : 조선 시대에 주로 왕의 위패를 봉안하고 공식 행사를 하던 곳

행궁을 나서 화성 둘레길 전체를 걷기 위해 팔달문 쪽으로 간다. 

정면에 보이는 길을 따라 공방거리를 지나 오른쪽 성벽을 따라 오르면 되니 길치라도 문제없다. 

 

화성행궁 야간개장 <달빛화담, 花談>

낮보다 더 아름다운 수원화성의 밤, 달빛 아래 다정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시간.
도심 속 아름다운 궁궐의 야경과 고즈넉한 분위기, 달빛과 초롱빛을 따라 거닐다보면 행궁 곳곳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2024. 5. 3.(금) ~ 10. 27.(일) 기간 중 매주 금~일요일(공휴일 포함)
화성행궁이 자랑하는 야간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기간은 재단 사정에 따라 변경 될 수 있음
관람시간 18:00~21:30 (21:00 매표 및 입장 마감)
구분 성인 청소년 군인 어린이
입장료 1,500 1,000 700

 

※ 한복(개량한복 포함) 착용 시 무료입장
※ 만 6세 이하의 미취학 이동 무료입장
※ 만 65세 이상 무료입장
※ 「장애인복지법」 제2조에 따른 장애인등록증 및 장애인복지카드 소지자(1~3급 보호자 1인 포함, 4~6급 본인 한정) 무료입장

 

화성행궁을 찬찬히 걸었다.

도 닦는 마음으로...

정조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어 수원 행궁을 그의 걸음으로 느리게 걷기 시작했다.

아무 느낌이 없다.

왕의 걸음으로 걸어보고 싶었으나 수원화성을 다 돌아보고 저녁준비하러 가야해서 머슴의 걸음이 되고 말았다.

 

정조는 화성행궁을 거닐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은 알 수 없지만 자존감은 쩔었을 듯 하다.

 

화성행궁은 아늑하고 편안한데 이상하게 전투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는 늘 위태했으나 우울함은 없었던 듯 하다.

화성행궁엔 그런 마음이 담겨있었다.

 

걸으면 씩씩해지는건 맞말이다.

걷고나면 우울해 지는것도 맞말이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잠시 잊을 뿐.

 

수원의 간지를 철철 뽐내는 둘레길로 이어서 걸어봅니다. 

 

캐간지 철철 뽐내는 수원화성과 둘레길

화성행궁에서의 왕의 걸음 흉내는 대실패로 끝났다. 왕 흉내도 못내는걸 보니 조상님들이 왕 근처에도 못가봤나 보다. 왕의 걸음으로 걸어보는 수원 화성행궁 모든 여행은 계획이 절반, 여행중

walking-aliv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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